나토 (NATO)의 정의
NATO (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) 북대서양 조약기구
로고에 OTAN이 적힌 이유는 게르만어 국가에서는 NATO로 읽지만 프랑스 등 로망스어군에서는 OTAN이라고 읽히기 때문에 모두를 포함하기 위해 이렇게 적는다고 합니다.
나토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구 소련 연맹에 대항해 창설한 북미와 유럽의 서방 국가 군사 동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. 이 공동체의 존재의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설립 목적은 나토 헌장 5조 입니다.
어느 일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.
그러한 공격이 있을 경우 유엔헌장 제51조에서 인정한 독자적 또는 집단적 방위권한을 행사하여
각 회원국들은 집단적 또는 독자적으로 공격받는 국가를 상호원조한다.
한 마디로 요약하면, "우리 중 하나라도 건드리면 집단싸움으로 응수한다" 라는 의미 인 것 같습니다. 상당히 무섭죠? 그 당시 구 소련 연합의 위기감이 그렇게 컸던 것 같습니다.
나토 역사
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 후, 전쟁은 끝이 났지만 더 큰 이념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. 소련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2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에 동유럽의 국가들을 모두 공산화 시키는데 성공합니다. 거기에 더 나아가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고 있던 독일에서 마르크화 평가 절하 그리고 베를린 봉쇄를 통해 모든 물자와 전기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전 독일을 지배하에 둘 야욕을 드러냈습니다.
소련의 이런 군사/자원/이념 위협은 서방 국가의 군사 동맹을 촉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나토입니다. 처음 나토는 미국, 캐나다, 영국, 프랑스, 벨기에, 룩셈부르크 등 북미와 중부 유럽의 몇개 나라들만의 협약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베를린 봉쇄를 겪으며 위기감을 느낀 북/남 유럽의 국가들이 대거 합류하게 되어 지금의 나토가 되었습니다. 나토는 그 이후로 1952년 그리스와 터키 가입, 1955년 서독의 가입 그리고 1982년 스페인의 가입으로 영향력을 확대해갔습니다.
소련은 이에 대항해 동유럽 국가들을 모아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했지만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날 때까지 양 협약간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습니다. 해체 된 바르샤바 조약기구와는 다르게 나토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.
나토와 우크라이나
나토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그럼 우크라이나와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? 아주 중요한 관련이 있는데 바로 구소련 해체 후 흩어져버린 바르샤바 조약 국가들입니다. 아래 왼쪽 사진을 보면 처음 해체 되었을 때만 해도 우파적인 성향을 모두 유지하고 있었습니다. 이게 왜 중요하냐!
바로 소련이 지리적/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있어 고립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. 자본주의의 성공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경제력/정치력은 어마어마하게 강해져만 갔고 구 소련은 그런 서방과의 충돌 그리고 정치적/이념적/경제적 고립을 두려워했습니다. 구 소련이 해체된 이후 러시아는 소련 연방은 사라져도 자신이 원래 만들었던 정치적/이념적 연대를 원했고 그 우방 국가들이 든든하게 자신과 서방 북미 /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해주기를 바랬습니다.
하지만 자본주의의 경제체제하에서 동유럽 국가들은 더이상 어떠한 원조도 해주지 않는 (또는 해줄 수 없는) 러시아가 아닌 나토와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. 실제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나토에 가입한 상태 입니다. 아래 사진을 보면 나토로 대변되는 서방 국가들이 벌써 러시아 턱 밑까지 쫓아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. 이에 러시아는 정치적/경제적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었죠.
이 상황에서 단 하나 남은 동유럽 국가가 바로 우크라이나 입니다. 우크라이나는 특히 러시아가 무기로 삼고 있는 천연가스 자원에 있어 정말 중요한 나라인데요. 아래 그림을 보면 바로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. 바로 러시아의 주요 자원인 천연가스 수출에 있어 유럽으로 가는 대부분의 가스관이 모두 우크라이나에 존재하는 것입니다. 가스관을 설치할 때만해도 러시아 영토였던 우크라이나가 수십년이 지나 이런 분쟁의 씨앗이 될 줄 몰랐던 거겠죠.
최근 여러 어려움을 나토 가입을 고려하던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. 정치와 경제로 얼룩져버린 우리의 22년 1월,,,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정말 악몽 같았던 한달로 기억될 것 같은데요. 아무쪼록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희망해봅니다!
다음 포스팅에서는 본격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분쟁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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